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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 사이] 당신이 중국의 AI 발전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 <브레이크 넥>

[AI와 인간 사이] 당신이 중국의 AI 발전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
[AI와 인간 사이] 당신이 중국의 AI 발전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 <브레이크 넥>

2026년 4월 20일 밤, 베이징의 문샷 AI가 X에 짧은 공지 하나를 올렸다.

“Kimi K2.6, 오픈소스로 출시.”

1조 파라미터의 MoE(전문가 혼합) 모델이 허깅페이스(Hugging Face)에 풀렸다. 회사가 공개한 벤치마크에 따르면 SWE-Bench Pro 58.6점으로 앤트로픽의 Claude Opus 4.6(53.4점), 오픈AI의 GPT-5.4(57.7점)를 앞섰다. API 가격은 입력 100만 토큰당 0.60달러, 출력 2.50달러로 Claude Opus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모델은 300개의 서브 에이전트를 동시에 돌리며 4,000단계에 걸쳐 하나의 엔지니어링 과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한다. 12시간 동안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8년 된 매칭 엔진을 뜯어 처리량을 185% 끌어올린 실행 로그가 함께 공개됐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9개월 동안 문샷이 내놓은 다섯 번째 주요 업데이트였다. 같은 기간 알리바바(Alibaba)의 Qwen 팀은 3.5 시리즈를 열고, 4월 16일에 Qwen 3.6-35B-A3B를 오픈소스로 풀었으며, 그 사흘 뒤에 Qwen 3.6-Max-Preview를 공개했다. 딥시크(DeepSeek)는 엔비디아 GPU가 아닌 Huawei Ascend 950PR 칩 위에서 돌아가는 V4 모델을 4월 말에 출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중국의 AI 연구실들은 무언가를 오픈소스로 내놓고 있다.

이 광경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렌즈가, 하나의 책에 담겨 있다.

브레이크넥
댄 왕 <브레이크 넥> 출처: 교보문고



<브레이크 넥>이 말하는 두 개의 AI 국가

댄 왕(Dan Wang)이 2025년 8월에 출간한 <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는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비즈니스 북” 최종후보에 올랐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책의 테제는 단순하고 도발적이다. 미국은 변호사의 나라(lawyerly society)이고, 중국은 엔지니어의 나라(engineering state)다.

댄은 두 나라를 이렇게 대비시킨다. 중국의 내각은 공학 학위 소지자로 채워져 있고, 국가의 기본 반응은 “뭔가를 짓는 것”이다. 상하이, 충칭, 선전의 도로와 교량, 고속철, 데이터센터가 그 결과물이다. 문제가 생기면 더 크고 빠르게 짓는 것으로 해결한다. 반면 미국의 엘리트는 로스쿨에서 배출되고, 지난 다섯 명의 대통령 대부분이 법학 학위를 가졌다. 미국의 기본 반응은 “소송하는 것”이다. 뭔가를 막는 일에는 천재적이지만, 새로운 걸 짓는 일은 수십 년째 지연된다.

댄의 비판은 중국을 향해서도 날카롭다. 엔지니어 국가는 사람마저 건축 재료처럼 다루는 순간 제로 코비드(Zero COVID)와 한 자녀 정책 같은 재앙으로 직진한다. 그러나 책의 핵심 관찰은 바뀌지 않는다. 짓는 나라와 막는 나라가 붙으면, 짓는 쪽이 속도에서 이긴다.

이 테제를 AI에 투영하면 지금 일어나는 일이 보인다. 미국은 프론티어 모델을 “법적 자산”으로 설계했다. 가중치는 회사 금고에 있고, API를 통해 토큰 단위로 임대된다. 중국은 AI 모델을 “인프라”로 설계했다. 가중치를 오픈소스로 풀어 마치 그들이 댐을 짓듯, 고속도로를 놓듯 누구나 그 위에 뭔가를 얹을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인프라는 국가가 보조금으로 떠받친다.

정부가 인프라를 깔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중국의 2025년 AI 자본 지출은 최대 98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 중 정부 기여분만 약 560억 달러다. 반도체 대기금 3호에만 500억 달러가 배정되어 있다. 2022년 2월에 시작된 동수서산(東數西算)은 동부 도시의 데이터 수요를 서부의 재생에너지 지역에 지어진 거대한 컴퓨팅 클러스터로 옮기는 국가 프로젝트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같은 도시들은 이미 컴퓨팅 바우처를 발행해 AI 스타트업이 GPU 시간을 정부지원 자금으로 빌려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규모보다 방향이다. 이 돈이 프론티어 모델 하나를 더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쓸 수 있는 토양 전체에 뿌려진다. 한 사람이 운영하는 일인 기업 창업자에게 무료 사무실과 보조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항저우와 저장성에서 돌아간다. 해외에서 돌아오는 중국인 AI 연구자에게는 선전이 주택 보조금과 비자 패스트트랙을 내건다. 쓰촨성과 닝샤의 데이터센터는 보조 전기를 쓴다.

결과가 숫자로 나타난다. a16z와 OpenRouter의 지난해 12월 조사에 따르면 중국 오픈소스 모델은 이미 글로벌 AI 사용량의 약 30%를 차지한다. 허깅 페이스의 2026년 봄 리포트는 2025년 2월부터 2026년 2월까지 한 해 동안 중국산 모델이 전체 다운로드의 41%를 기록한 반면 미국산은 36.5%에 머물렀다고 보고한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2026년 1월에 Qwen 패밀리의 누적 다운로드가 7억 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배포된 셀프호스트 대형언어모델은 이제 Meta의 Llama가 아니라 알리바바의 Qwen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돈이 절대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4년 말에는 중국에서 새로 지어진 컴퓨팅 자원의 최대 80%가 유휴 상태였다. 많은 데이터센터가 브로커와 보조금 사냥꾼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량 공세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엔지니어 국가의 방식이다. 낭비가 있더라도 일단 짓고, 그 위에서 뭔가가 자라난다.

미국 모델의 가격 천장이 고정된 이유

이 광경이 미국 AI 기업의 요금제 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앤트로픽은 2025년에 Claude Pro(월 20달러) 위에 Max 5x(100달러)와 Max 20x(200달러) 티어를 추가했다. 오픈AI는 2026년 4월 9일, Plus(20달러)와 Pro(200달러) 사이에 새로운 100달러 Pro 티어를 끼워 넣었다. 이 100달러 지점에서 두 회사는 정확히 같은 가격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리고 200달러 천장 위로는 아무도 올라가지 못한다. (구글 GEMINI가 Ultra 요금제를 300달러에 출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50% 할인 혜택으로 150달러에 사용할 수 있는 3개월간만 이 요금제를 사용 후 해지했다.) 왜?

답은 두 가지다. 첫째, 소비자의 심리 저항선이 거기에 있다. 둘째, 그 위에는 이미 오픈소스 중국 모델이 사실상 무료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Claude Opus 4.6의 입력 토큰은 100만 개당 15달러다. Kimi K2.6은 0.60달러다. 25배 차이다. 물론 벤치마크 점수가 실제 생산성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Claude의 경험이 여전히 더 부드럽다는 개발자들의 평가도 많다. 하지만 25배의 가격 차이는 “부드러움”으로 메울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그리고 월 200달러짜리 Claude Max 20x가 실제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해보자. 테스터들의 보고에 따르면 Max 20x의 실질 할당량은 5시간 창당 약 900 메시지다. Claude Code로 대규모 리팩토링을 몇 시간 돌리면 하루치 쿼터가 날아간다. Anthropic의 공식 메시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3월 26일의 업데이트는 피크 시간대에 세션 리밋이 의도적으로 더 타이트하게 조여진다는 것을 공식 확인했다.

막혀가는 통로, OpenClaw 차단과 B2C의 구조적 적자

2026년 4월 4일, 앤트로픽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Claude Pro와 Max 구독자가 자기 플랜의 사용량을 오픈클로(OpenClaw) 같은 외부 에이전트 프레임워크를 통해 돌리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많은 사용자가 구독 계정을 외부 애플리케이션에 연결해 쓰던 길이 한 순간에 막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B2C 사업의 정책 실패에 관한 고백이다.

구조는 이렇다. 앤트로픽의 2026년 3월 연간화 매출은 약 190억 달러. 놀라운 숫자다. 그러나 앤트로픽의 CFO Krishna Rao가 3월 9일 법원 문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회사는 창사 이래 누적 매출 “50억 달러 초과”에 대해 추론과 학습에만 “100억 달러 초과”를 썼다. 1달러 벌기 위해 2달러를 불태운 셈이다. 오픈AI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디 인포메이션이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오픈AI는 2026년 한 해에만 약 140억 달러의 손실을 예상하며, 900만 명의 주간 활성 사용자 중 유료 구독자는 5.5%에 불과하다.

이 숫자들은 중요하다. 현재 AI 생태계에서는 모델이 더 강력해질수록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필요로 한다. 성능이 좋아질수록 추론 모델들이 토큰을 더 많이 소모하면서 사용 비용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구독 가격을 소비자 저항선 때문에 올릴 수 없다. API 가격도 중국 오픈소스의 덤핑 때문에 올릴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은? 유일하게 가능한 답은 “같은 가격에 덜 주는 것”이다.

오픈클로 같은 외부 라우터를 막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구독자 한 명이 API 호출 100건 어치의 가치를 구독 한 개로 뽑아가는 구조는 회사 입장에서 지속 불가능하다. 세션 리밋을 피크 시간에 조이는 이유도 같다. 지난 2월 말 국방부 계약 논란 이후 챗GPT에서 Claude로 옮겨온 사용자 물결이 앤트로픽을 미국 앱스토어 1위에 올려놓았지만, 그 물결은 동시에 GPU 공급 한계에 부딪혀 실제 사용 경험의 저하로 이어졌다.

이 궤적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가격은 유지되거나 오르고, 리밋은 조용히 내려온다. 명시적 가격 인상 없이도 사용자는 실질적으로 더 비싸게 덜 쓰게 된다. 2026년은 그 곡선이 처음으로 눈에 보이게 드러난 해다.

한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엔지니어 국가가 인프라를 깔고, 변호사 나라가 그 인프라에 의존하는 자기 모델의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중간에 있는 우리는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대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월 200달러의 Claude Max 20x 또는 ChatGPT Pro를 쓰면서, 리밋이 더 조여지는 흐름에 적응한다. 엔터프라이즈 API 계약을 맺으면 일정 부분 해결된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에게는 통화 가치 경쟁력을 잃는 선택이고, 개인에게는 월 삼십만 원 이상의 고정 지출을 내는 선택이다.

두 번째는 오픈소스 중국 모델을 자체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AX 현장에서 이 선택지는 이미 현실이다. Qwen 3.5-35B-A3B 같은 모델은 4비트 양자화를 거치면 단일 RTX 5090 위에서도 돌아간다. Kimi K2.6은 이전 세대와 같은 OpenClaw 스택을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다. 자사의 서버 안에서 LoRA 파인튜닝으로 도메인을 주입하면, 연간 1만 5천에서 6만 달러의 훈련 비용으로 자사 데이터 위에서 Claude Sonnet 4.5급 성능을 얻는다. 한국의 대기업이 내부 문서, 법무 자문, 규제 준수처럼 데이터 주권이 결정적인 영역에 이 경로를 선택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 번째는 중국 상용 API를 직접 쓰는 것이다. 문샷의 platform.moonshot.ai는 앤트로픽의 기술 명세와 호환되는 엔드포인트를 제공한다. Claude Code를 쓰던 스택을 환경 변수 한두 개만 바꿔 Kimi K2.6으로 돌려도 대부분 그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Qwen API는 입력 토큰 100만 개당 0.23달러까지 떨어진다. 코딩 에이전트처럼 토큰을 많이 태우는 작업에는 즉각적인 비용 혁명이 된다.

각 경로에는 각자의 비용이 따른다. 오픈소스 자체 운영은 초기 엔지니어링 투자와 운영 역량을 요구한다. 중국 API 사용은 데이터 레지던시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간다. 일부 국가 정부들은 이미 공공 기기에서 DeepSeek 사용을 금지했다. 모델이 중국의 콘텐츠 모더레이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정 주제를 다룰 때 실질적으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다. 하나만 쓰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 답이다. 2026년 한국에서 AX를 진지하게 하는 조직은 이미 멀티 모델 아키텍처를 쓴다. Claude는 크리티컬한 고부가가치 작업에, Qwen이나 Kimi는 대량 반복 작업과 데이터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작업에, 로컬 파인튜닝 모델은 자사 도메인 특화 업무에 배치된다. 하나의 벤더에 올인하는 것은, 엔지니어 국가가 벤더를 물량으로 압도하는 이 시대에 가장 비싼 선택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 관료의 국가

여기서 댄 왕의 틀을 한국에 가져오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한국은 엔지니어의 나라도 변호사의 나라도 아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관료의 국가였다.

한국의 거의 모든 대형 혁신은 정부 주도로 일어났다. 1970년대 조선과 철강, 1980년대 반도체, 1990년대 말의 초고속 인터넷망, 2010년대의 디스플레이 패권, 최근의 K콘텐츠 글로벌화까지. 정부가 관세를 설계하고, 지원금을 뿌리고, 규제를 열어주고, 공공조달을 깔아주면 대기업이 그 위에 제국을 세웠다. 그 결과 한국은 GDP 대비 수출 비중이 35%를 넘는 나라가 되었다. 관료의 설계도가 정확할 때, 이 모델은 놀랍도록 잘 작동해 왔다.

문제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벌어진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거나, 기존 산업의 규제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나려 할 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약한 나라 중 하나가 된다.

2018년 VCNC의 타다가 11인승 렌터카 기반 승합 호출 서비스로 출시되었다. 170만 명의 사용자를 모았고,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기성 택시 업계와 충돌했다. 2020년 3월, 국회는 이른바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타다는 불법이 되었고, 창업자 이재웅은 “한국에서 혁신은 죽었다”는 말을 남겼다. 로톡(Law Talk)은 대한변협과 몇 년에 걸친 싸움을 치렀고, 닥터나우(DoctorNow)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혔으며, 헤이딜러(Hey Dealer)는 자동차관리법 개정 한 번으로 불법이 되었다. 기득세력이 유권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면, 선출된 권력은 혁신보다 표를 먼저 선택한다. 관료의 국가는 민원을 처리하는 대행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AI 시대에 주는 의미는 묵직하다. 중국 정부가 2025년 한 해에만 AI에 560억 달러를 직접 집행하는 동안, 한국 정부의 국가 소버린 AI 이니셔티브는 2025년 중반에 LG AI Research, SK텔레콤, 네이버 클라우드, NC AI, 업스테이지를 “국가대표”로 지명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몇몇 모델이 허깅 페이스의 트렌드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Qwen이 한 달 만에 찍는 다운로드 숫자를 우리는 국가적으로 일 년에 찍지 못한다. 관료가 깔아야 할 판의 규모와, 관료가 실제로 깔고 있는 판의 규모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

더 무서운 시나리오는 이것이다. 정부가 AI에서 결정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한국판 AI 기반 혁신이 기존 산업의 규제 벽에 부딪혀 타다처럼 죽어 나가는 일이 반복되는 것. AI 진료 보조 서비스가 의료계의 반발에 막히고, AI 법률 자동화가 변협의 저항에 막히고, AI 교육 플랫폼이 학원과 교육청 규제에 걸리고, AI 기반 세무 서비스가 세무사회의 로비에 묶이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거나 곧 시작될 일이다. 2020년에 타다를 죽인 그 메커니즘이 2027년에는 AI 스타트업 여러 곳을 같은 방식으로 죽일 수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한국을 결정하는 질문은 명확해진다. 관료의 국가가 엔지니어의 국가처럼 과감하게 판을 깔 수 있는가. 그리고 깔지 못한다면, 적어도 기득세력이 새로운 것을 죽이지 못하게 방패를 들어줄 수 있는가. 이 둘 중 하나라도 해내는 한국은 AI 시대의 승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둘 다 실패하는 한국은, 엔지니어 국가가 깐 인프라 위에서 변호사 나라의 비싼 API를 토큰 단위로 사 쓰는 소비자로만 남게 된다.

닫는 질문

댄 왕은 <브레이크 넥>에서 미국에게 중국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일본 수준의 인프라 건설 비용만 회복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한국에 옮기면, 우리가 중국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관료의 국가라는 익숙한 옷 안에서 세계가 이렇게 빠르게 짓고 있는데 우리만 허가를 기다리고 있어서도 안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이런 생각이 남는다. 2020년대의 나머지 시간을 결정할 질문은 “오픈AI가 이기느냐 앤트로픽이 이기느냐”가 아니다. “미국 모델이 이기느냐 중국 모델이 이기느냐”도 아니다. 진짜 질문은 짓는 나라들이 세계의 AI 인프라를 깔아놓은 이 시대에, 짓지 않는 나라들, 허가하기만 하는 나라들은 무엇이 될 것인가이다.

한국만 놓고 바라보자. 냉정하게 한국 앞에는 세 갈래 길(A, B, C로 칭함)이 놓여 있다.

A의 길을 선택한다면, 한국은 과거의 성공 공식을 AI에 재현한다. 관료의 국가가 엔지니어 국가의 문법을 빌려온다. 국가 컴퓨팅 인프라를 수십조 원 규모로 깔고, 전력망을 AI 데이터센터 우선으로 재배치하고, 국가대표급 파운데이션 모델에 집중 투자하고, 공공데이터를 학습 자원으로 개방한다. 동시에 AI 기반 신산업이 기존 업권의 장벽에 부딪힐 때 규제 샌드박스와 입법으로 방패를 들어준다. 이 길을 택한 한국은 자체 모델과 자체 인프라 위에서 AX를 수행하는 나라가 된다. 2030년대에는 동남아시아와 중동에 한국산 AI 스택을 수출하는 3등 플레이어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1등은 미국, 2등은 중국, 그다음 자리를 두고 일본, 프랑스, 인도와 경쟁하는 게임이다. 쉽지 않지만 가능한 그림이다.

B의 길을 선택한다면, 한국은 자체 모델 경쟁을 포기하고 응용의 나라로 전환한다. 인프라와 파운데이션 모델은 미국과 중국에 맡긴다. 대신 그 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된다. 멀티모델 아키텍처를 기본값으로 채택한 기업들이 산업별 특화 AI 제품을 세계 시장에 내놓는다. 스위스가 스스로 반도체를 만들지 않으면서 세계 금융의 허브가 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대국의 플랫폼 위에서 사이버 보안 강국이 된 것처럼. 이 길을 택한 한국은 AI의 소비국이자 동시에 응용의 수출국이 된다. 규제가 신속히 현대화되어야 하고, 기득세력의 저항을 돌파할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지만, 한국이 지난 30년간 쌓아온 제조·서비스 경쟁력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길이기도 하다.

C의 길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위원회를 만들고 용역을 발주하며 시간을 보낸다. 의료계·변협·교육청·세무사회가 AI 혁신을 하나씩 타다처럼 눕힐 때마다 정치권은 표를 따라간다. 대기업은 해외 API 구독료를 꾸준히 지불하고, 그 비용은 제품 가격에 전가된다. 스타트업은 규제의 유리천장과 비용의 철천장 사이에 끼여 창업 단계에서부터 해외 법인 설립을 먼저 고민한다. AI 인재는 한국에서 훈련받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한다. 이 길은 선택이 아니라 표류다. 그리고 표류의 끝에서 한국은, 엔지니어 국가가 깐 인프라 위에서 변호사 나라의 비싼 토큰을 계속 사 쓰는 소비자로 남는다. 5년이면 경쟁력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지고, 10년이면 되돌릴 수 없는 종속이 된다.

이 세 갈래 중에서 어느 길이 정해진 결론인 것은 아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AI 시대의 승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2026년 4월 현재 시점에서 한국이 어느 길에 서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정부의 어떤 부처는 A의 언어를 쓰고, 현장의 어떤 기업은 B의 실행을 하고 있으며, 많은 영역은 C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

그 길을 고르는 것은 정책 결정자만의 몫이 아니다. 진정한 선택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 바로 우리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 규제를 설계하는 사람,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 투표하는 사람, 그리고 매일의 현장에서 어떤 모델을 어디에 배치할지 결정하는 사람들. 우리의 무수한 선택들이 쌓여 길이 된다.

2027년의 나에게, 2036년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지금 할 일은 분명하다. 세계가 짓고 있는 속도에 발맞추는 것. 익숙한 허가의 문법 대신 짓는 문법을 조금이라도 몸에 익히는 것. 그리고 옆 사람이 새로운 것을 지으려 할 때, 기득의 언어로 그것을 막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 역사는 길을 결정한 세대가 아니라 길을 만든 세대의 이름을 기억한다. AI 시대의 한국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 우리 세대의 선택이다.

이 칼럼은 [AI와 인간 사이] 시리즈의 세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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