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지났다. 아이들이 이 날을 유독 사랑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선물이나 놀이공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이날에는 평소에 듣던 말들이 사라진다. “안 돼”, “위험해”, “그건 나중에.” 그 자리를 “뭐 하고 싶어?”, “그래, 해보자”가 채운다. 무엇이든 해도 되고, 상상해도 좋고, 망쳐도 좋은 날. 아이들이 이 날을 사랑하는 건 선물 때문이 아니라, 가능성이 열리는 그 기분좋은 해방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요즘 AI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뉴스가 매일 나오고 아이들의 기회는 더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본다. AI는 오히려 어른들에게는 위협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날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매일이 어린이날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날개 말이다.
호기심이 막히지 않는 시대
![[에이-아이랑] 매일이 어린이날 같기를 - AI 시대의 또 다른 놀이터 1 티라노사우루스랑](https://aimatters.co.kr/wp-content/uploads/2026/05/티라노사우루스랑.jpeg)
초등학생 과학 덕후들이 ‘보다’ 채널을 사랑한다는 걸 아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블랙홀이 궁금하면 물리학 교수의 강의를 찾아보고, 공룡이 궁금하면 고생물학자의 설명을 듣고, 그렇게 대학 교수들이 진지하게 풀어주는 과학 콘텐츠를 초등학생들이 즐겨 보는 시대가 됐다. 예전 같았으면 “그건 대학 가서 배워”로 끝났을 호기심이, 지금은 막히지 않는다.
AI는 이걸 한 차원 더 끌어올린다. 궁금한 게 있으면 챗GPT에게 물어보는데 답변의 수준이 이전과는 다르다. 검색 결과를 나열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의 수준에 맞춰 설명해준다. “티라노사우루스랑 코끼리가 싸우면 누가 이겨?” 같은 질문에도 몸무게와 속도와 교합력을 비교해가며 진지하게 답하고, 아이가 “그럼 바다에서는?”이라고 이어 물으면 또 이어지고, 거기서 “그럼 빙하기 때는?”으로 꼬리를 물면 또 따라간다. 모르면 네이버에 물어보던 시절을 지나, 지금 아이들 앞에는 절대 지치지 않고 절대 “나중에”라고 말하지 않는 선생님이 24시간 앉아 있는 셈이다.
중학생이 AI로 자기만의 앱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유튜브와 챗GPT를 오가며 독학으로 작곡을 배우고, 해양생물자원관에서는 초등학생이 AI와 함께 동화책을 쓰는 공모전이 열린다. 이 아이들에게 AI는 위협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배우고, 호기심을 끝까지 따라가볼 수 있게 해주는, 지금껏 없었던 종류의 기회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아이의 호기심을 두 종류로 나눈다. 모르는 게 불안해서 답을 찾으려는 호기심과, 알고 싶은 게 즐거워서 더 파고드는 호기심. 후자를 ‘인식적 호기심(epistemic curiosity)’이라 부르는데, 이 호기심이 깊은 학습과 창의성의 뿌리가 된다. 그런데 이 호기심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질문했을 때 응답이 돌아와야 한다는 것. 아이가 “왜?”라고 물었는데 “나중에”로 돌아오면 호기심은 꺼진다. AI는 그 “나중에”를 없애준다. 질문하면 답이 오고, 답이 또 다른 질문을 부르고, 그 순환이 끊기지 않는다. 아이의 인식적 호기심이 살아 있을 수 있는 환경이 기술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패 비용이 사라진 놀이터
![[에이-아이랑] 매일이 어린이날 같기를 - AI 시대의 또 다른 놀이터 2 더 밤은 노핑으로](https://aimatters.co.kr/wp-content/uploads/2026/05/더-밤은-노핑으로.jpeg)
AI가 아이들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실패해도 잃을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림을 그리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그려줘” 한마디면 되고, 코드를 짜다 에러가 나면 “이거 왜 안 돼?”라고 물으면 되고, 작곡을 하다 멜로디가 이상하면 “좀 더 밝은 느낌으로”라고 하면 된다. 도화지를 찢을 필요도 물감을 낭비할 걱정도 선생님 눈치를 볼 이유도 없는, 실패 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놀이터가 생긴 셈이다.
AI가 만들어주는 ‘실패해도 괜찮은 공간’은, 아이들에게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는 연습장이 될 수 있다. 틀려도 되고 다시 해도 되고 열 번을 고쳐도 아무도 한숨을 쉬지 않는 공간, 아이들이 마음껏 망칠 수 있는 안전한 실험실. 어린이날이 일 년에 하루뿐인 게 아쉬웠다면, AI는 그 ‘망쳐도 괜찮은 날’을 매일로 늘려주는 도구다.
물론, 문제는 있다
물론 AI가 잘못된 정보를 자신 있는 어조로 말하기도 하고, 아이가 생각하는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고 답만 복사하는 일도 생기고, 딥페이크처럼 기술이 누군가를 해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제한이 필요한 영역은 분명히 있고, 화면 시간을 관리해야 하며, AI의 답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무엇이 먼저인가 생각해본다면 “하지 마”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쓸까.” 를 고민하고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가위가 위험하다고 가위를 영영 쥐어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처음에는 함께 잡아주고, 다칠 수 있는 상황을 알려주고, 조금씩 손을 놓는다. AI도 다르지 않다.
위험하니까 멀리하라가 아니라, 위험한 부분을 알려주면서 함께 쓰는 것이다. 어차피 이 아이들은 AI 네이티브로 태어났다. 우리가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 아이들에게 AI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는 문을 여는 사람이다
![[에이-아이랑] 매일이 어린이날 같기를 - AI 시대의 또 다른 놀이터 3 뭐든 해봐도 돼](https://aimatters.co.kr/wp-content/uploads/2026/05/뭐든-해봐도-돼.jpeg)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AI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아이들이 더 빨리 배운다. 부모가 할 일은 다른 데 있다. 가능성의 문 앞에서 그 문을 열어주는 것, 아이가 주저할 때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가능성을 여는 열쇠는 멋진 교육이 아니라 부모가 주는 분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해봐도 돼”라는 분위기,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분위기. 집 안에 그런 공기가 흐르면 아이는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나선다.
어린이날이 끝나면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안 돼”와 “빨리 해”가 돌아오는 일상. 하지만 먼 미래의 아이의 일상은 조금은 달라질지 모르겠다. AI가 날개를 달아주고, 부모가 “날아봐”라고 말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 되는것 말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쩌면 기술이 아니라 가능성의 문을 닫지않겠다는 마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이디오그램 생성
![[에이-아이랑] 매일이 어린이날 같기를 - AI 시대의 또 다른 놀이터](https://aimatters.co.kr/wp-content/uploads/2026/05/WINGS-FOR-EVERY-KI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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