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지난 한 해 동안 내 마음속에는 무거운 회의감과 후회가 소용돌이쳤다. 우리나라 전통공예 분야의 전수조교와 이수자들을 대상으로 6년째 ‘창의적 사고확장’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면서, 2년 전부터 과감하게 ‘생성형 AI 활용’ 과정을 도입했다. AI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말고, 새로운 도구를 예술가의 작업 안으로 주체적으로 끌어들이자는 당당한 의도였다.
<AI를 처음 접하게된 작가들의 첫 인상>
워크숍 첫날의 풍경은 아직도 선명하다. 서툴고 낯선 환경 속에서도 신세계를 만난 듯 눈을 반짝이던 작가들의 얼굴, 그리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라며 감탄하던 목소리에 나 역시 고무되어 있었다. AI가 그들의 창작 언어를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교육이 중반쯤 흘렀을 때, 조용히 손을 드신 한 작가의 한마디 질문에 멈춰 있던 나침반의 바늘이 움직였다.
“얘(AI)가 다 해주네요! 그런데… 이걸 그냥 우리가 가져다 써도 되는 건가요?”
순간 강의실 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 짤막한 질문 안에는 예술가로서의 양심, 창작의 책임, 그리고 AI와 공존해야 할 창작자가 지녀야 할 기준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날 깨달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라는 것을 말이다.
사라진 감각, 그리고 던져진 질문
질문을 던진 그 작가의 우려는 곧 잔인한 현실로 다가왔다. 달콤한 AI의 풍요 뒤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 언어를 잃어갔다.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AI가 뱉어낸 그럴듯하고 매끄러운 문장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AI가 건낸 수많은 선택지에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박하지만 솔직했던 작가관’ ‘늘 써오던 단어에서 풍기던 고유한 작가만의 취향’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던 ‘말하지 않은 여백’의 힘’
“작가들의 이 모든 감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어요.”
레지던시 작가들을 지켜봐 온 큐레이터는 작가들이 제출한 도록 원고를 감수하다가 결국 참았던 실망감을 내비쳤다. 그의 하소연은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큐레이터의 실망은 죄책감이 되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AI가 침범하지 말았어야 할 영역을 ‘확장’이라는 핑계로 허문 것은 아닐까. 마음이 급해졌다. 올해 새로 시작될 레지던시 과정은 분명 달라야 했다.
껍데기를 벗겨내고, 다시 자신의 숨을 쉬도록
어떻게 하면 그들이 생성형 AI라는 매끄러운 껍데기를 벗겨내고, 다시 자신만의 거친 호흡과 문장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이 묵직한 고민의 단서를 찾기 위해 나는 작가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술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의도와 선택’이었다.
AI 기술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풍요 앞에서도, 위대한 예술가들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 AI가 제안한 선택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어주는지, 그리고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10년 뒤에도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가 AI를 내 등 뒤로 보낼 때, 기술은 비로소 나를 지치지 않게 만드는 단단한 엔진이 된다. 내 고유한 감각을 가로막던 그럴듯한 기술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무대 뒤의 조명으로 밀어 넣는 순간, 창작자는 다시 자신만의 온전한 호흡으로 숨 쉬기 시작할 것이다. AI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 예술가들이 주도권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숨을 쉴 수 있도록, 이제는 그들의 단단한 중심을 깨워야 할 시간이다.
AI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앞에 두지 말자
AI라는 거대한 풍요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강력한 힘을 통제할 주도권을 쥐는 일이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스스로 전면에서 물러나 숨어버렸을 때다. AI가 아무리 매끄러운 문장과 완벽한 결과물을 순식간에 뱉어내도, 그 안에 흐르는 맥락을 설명하고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창작자 자신이어야 한다.
‘AI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다만 작가 앞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AI도구는 분명 유용하다. 하지만 언제나 의도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의 핵심이,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다들 인정한다. AI는 도구일 뿐이다라고. 도구는 전면에 설 때 가장 위험해진다. 앞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은 AI로 인해 ‘인간의 감각’을 가려버리는 모든 장치다. 역사적으로도 기술은 인간을 도울 때가 아니라, 인간을 가리는 순간에 늘 큰 문제를 일으켰다.
신생기업의 가능성에 시장이 반응하도록 돕는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AI가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인간을 닮아갈 수록 오히려 더욱 또렷해지는 ‘인간의 가능성’을 포착해, 이를 시장의 반응과 고객의 언어로 신사업개발로 풀어내는 일을 한다. 늘 그래왔듯이 시장은 결국 기술이 아닌 사람에게 먼저 반응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