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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이랑] AI 시대, 가르치지 말고 함께 헤매라

AI 시대, 가르치지 말고 함께 헤매라
AI 시대, 가르치지 말고 함께 헤매라

우리 집에는 아이와 함께 만든 게임이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AI에게 “테트리스 게임을 만들어줘”라고 시킨 것에서 시작했다. 처음에 나온 결과물은 솔직히 별로였다. 아이가 “이건 너무 쉬워, 재미없어”라고 했고, 나는 “그러면 네가 직접 원하는 디자인으로 바꿔봐”라고 했다. 아이는 프롬프트를 고치기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이 부분은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라고 끼어들었고, 둘이서 몇 번의 실랑이를 한 끝에 꽤 괜찮은 게임 하나가 나왔다.

AI를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부모님들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하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가르칠 게 없다. 나도 모르니까. AI는 매달 새로운 기능이 나오고, 어제 통하던 프롬프트가 오늘은 안 먹히기도 하고, 한 달 전에 배운 방식이 이미 구식이 되기도 한다. 이건 교과서를 펴고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이 아니다. 계속 배우고, 배운 것을 의심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어른도 아이도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가르치는 부모에서 함께 헤매는 부모로

이건 부모에게 꽤 낯선 포지션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역할에 익숙하다. 숙제를 봐주고, 모르는 문제를 풀어주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그런데 AI 앞에서는 그 포지션이 작동하지 않는다. 부모도 처음 써보는 도구이고, 아이가 더 빨리 적응하는 경우도 많고,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발달심리학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완벽하게 아는 상태’에서 가르칠 때보다, 부모가 ‘함께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탐색할 때 더 깊이 학습한다는 것이다. 비고츠키가 말한 ‘비계(scaffolding)’가 꼭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일 필요는 없다. 옆에서 같이 올라가는 구조여도 된다. 아이는 부모가 모든 답을 알고 있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가르치는 부모’ 대신 ‘공동탐험가’라는 말을 쓴다. AI라는 미지의 대륙을 아이와 함께 탐험하는 것이다. 내가 지도를 갖고 있어서 이끄는 게 아니라, 둘 다 지도가 없는 상태에서 같이 걸어보는 것이다.

함께 만드는 것의 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요리하고, 같이 블록을 쌓고, 같이 보드게임을 한다. 결과물의 완성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했다’는 경험 자체가 아이에게는 크다. AI는 이 ‘같이 하기’의 범위를 엄청나게 넓혀준다.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릴레이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게임을 만드는 일들을 시작하기도 한다. AI에게 “간단한 미로 게임 만들어줘”라고 하면 기본 코드가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아이와 함께다. “여기에 몬스터를 넣자”, “배경 색깔을 바꾸자”, “클리어하면 축하 메시지가 나오게 하자.” 아이가 아이디어를 내고, 부모가 프롬프트로 옮기고, 결과를 보고 같이 수정한다. 코딩을 배우는 게 아니다.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로 꺼내는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 이건 꽤 대단한 성취감이다. ‘내가 생각한 것이 진짜로 돌아간다’는 경험은, 학원에서 이론을 배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니까.

먼저 풍덩 뛰어드는 것

다만 한 가지 순서가 있다면, 부모가 먼저 경험해보는 게 좋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탐험하려면 최소한 물에 발은 담가봐야 한다.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니다. ChatGPT에 오늘 저녁 뭐 먹을지 물어봐도 되고, 주말 여행 계획을 짜달라고 해도 되고, 회사 이메일 초안을 써달라고 해도 된다. 중요한 건 AI를 ‘공부’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써보는 것이다. 써보면 안다.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 어디서 놀라고 어디서 실망하는지. 그 감각이 있어야 아이와 함께 탐험할 때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말해줄 수 있다.

AI를 다루는 능력은 한번 배워서 끝나는 기술이 아니다. 배우고, 익숙해지고, 새로운 게 나오면 기존에 알던 걸 내려놓고 다시 배우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언러닝(unlearning)과 러닝(learning)의 순환. 이건 어른이든 아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오히려 어른이 더 힘들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는 게 어려우니까. 그런 면에서 아이와 함께 배우는 것은 부모에게도 좋은 연습이 된다. 아이 앞에서 “나도 이건 잘 모르겠는데, 같이 해볼까?”라고 말하는 것.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엄청난 안도감을 준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부모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완벽한 탐험가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AI 탐험에서 완벽한 가이드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 같이 헤매면 된다. 같이 시도하고, 같이 실패하고, 같이 다시 해보면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운다. 모르는 것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법, 낯선 도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어떤 미지의 세계도 탐험할 수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야말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해줄 수 없는, 부모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AI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