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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을 하거나 설거지 영상을 찍어 올리면 돈을 준다? 피지컬 AI 학습 데이터를 위한 시장

배달을 하거나 설거지 영상을 찍어 올리면 돈을 준다
이미지 출처: 챗GPT 생성

미국 배달앱 도어대시(DoorDash)는 배달 기사에게 색다른 부업을 제안한다. 집에서 설거지하고 빨래 개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면 돈을 준다는 것이다. 얼핏 공돈처럼 보이지만, 그 영상이 향하는 곳을 알면 서늘해진다. 노동자가 찍어 올린 자신의 집안일 영상은, 언젠가 그 집안일을 대신할 가정용 로봇을 학습시키는 데 쓰인다. 2026년 미국에서는 이렇게 사람의 일상 행동을 데이터로 바꿔 파는 회사가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피지컬 AI(Physical AI), 즉 현실에서 몸을 움직여 일하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려면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담은 영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머노이드 로봇과 로봇핸드를 만드는 기업이 적지 않은 한국에는, 정작 이 ‘데이터 그 자체를 파는 회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로봇은 만드는데 로봇이 먹을 밥은 왜 안 만드는 걸까.

내 손으로 나를 대체할 로봇을 훈련시키는 역설

피지컬 AI 데이터 사업이란 서비스나 노동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인간의 행동 영상을 모아 파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도어대시다. 이 배달 플랫폼은 ‘태스크(Tasks)’라는 별도 앱을 만들어, 배달 기사들이 일상 작업을 촬영하거나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을 녹화해 돈을 벌 수 있게 했고, 이 데이터가 AI와 로봇 시스템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설명한다. 미국 내 800만 명에 달하는 계약직 인력을 동원하며, 제출된 영상은 자사 AI뿐 아니라 소매·보험·접객·기술 부문 파트너의 AI 모델 평가에도 쓰인다. 배달 노동자가 자기 집 설거지를 찍어 올리면, 그 데이터로 설거지하는 로봇이 똑똑해지는 구조다. 노동자가 자기 손으로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 기계를 가르치는 셈이다.

이 역설은 도어대시만의 것이 아니다. 시프트(Shift)는 남의 집을 공짜로 청소해주되 검증된 운영자가 카메라 장비를 착용하고 청소 전 과정을 1인칭 영상으로 녹화해 로봇 훈련 데이터로 사용한다. 청소는 미끼고 진짜 상품은 영상이다. 마이크로원(Micro1)은 인도,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등 50개국 이상에서 수천 명을 고용해 아이폰을 머리에 장착하고 빨래 개기·설거지·요리를 녹화하게 한다. 공통점은 하나다. 고객이 받는 것(배달, 청소)과 회사의 수익원(행동 데이터)이 다르다는 점이다.


청소도 배달도 미끼? 행동 영상이라는 새 사업 모델

미국에서는 같은 논리로 움직이는 회사가 이미 10개 안팎에 이른다. 휴먼 아카이브(Human Archive)는 인도 긱워커에게 카메라 모자와 센서를 착용시켜 처음부터 물리 세계 행동 데이터 수집용으로 설계된 사업을 벌이고, 오픈AI·엔비디아·구글·메타의 엔젤 투자자들로부터 820만 달러를 모았다. 선데이 로보틱스(Sunday Robotics)는 2만 달러짜리 원격조종 장비 대신 약 200달러짜리 스킬 캡처 글러브를 일반 가정에 배포해, 사람들이 집안일을 하며 고정밀 동작·힘 데이터를 녹화하게 한다.

sunday robotics
출처: 선데이로보틱스 홈페이지

수집 방식은 점점 정교해진다. 텔레오퍼레이션(원격 조작) 업체들은 사람이 로봇을 원격으로 조종하다 실패하는 예외 장면까지 학습 데이터로 기록하고, 머리에 카메라와 센서를 단 웨어러블 수집 스타트업은 작업자의 손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시간당 비용을 주고 청소·세탁 영상만 사 가는 ‘가사 영상 마켓’도 형성됐다. 데이터 수집을 로봇 개발의 부속 작업이 아니라 독립된 수익 사업으로 떼어낸 것이 이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미국에는 그렇게 행동 데이터를 캐내는 광맥이 자리 잡았다.

해외 피지컬 AI 데이터 비즈니스 현황 한눈에 보기

지금까지 살펴본 해외 사례를 한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사례국적·운영핵심 수집 모델데이터를 모으는 방식의 본질
도어대시 태스크(DoorDash Tasks)미국배달 노동자가 설거지·빨래 등 집안일을 촬영해 업로드배달앱의 부가 기능처럼 보이지만, 800만 긱워커를 동원한 대규모 행동 데이터 확보가 목적
시프트(Shift)미국(독일 마이크로아지 자회사)무료 청소를 제공하며 전 과정을 1인칭 영상으로 촬영청소 서비스 판매가 아니라 청소 장면 영상을 AI 연구소에 판매하는 것이 핵심
휴먼 아카이브(Human Archive)미국·인도긱워커에게 카메라 모자·센서를 착용시켜 작업 촬영처음부터 물리 세계 행동 데이터 수집용으로 설계된 사업, 820만 달러 투자 유치
마이크로원(Micro1)미국(50여 개국 운영)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집안일을 촬영하게 하고 데이터 판매로봇 학습용 가사 시연(household demonstrations) 영상을 대량으로 모아 로봇 기업에 판매
선데이 로보틱스(Sunday Robotics)미국200달러짜리 스킬 캡처 글러브를 가정에 배포해 집안일 동작 기록비싼 원격조종 장비 대신 저가 장갑으로 로봇 조작 데이터를 확보하는 전용 모집형 사업
스케일 AI·엔코드(Scale AI·Encord)미국글로벌 녹화자 모집 및 피지컬 AI 전용 데이터 인프라 구축기존 데이터 라벨링 강자가 로봇용 멀티모달 데이터 시장으로 영역 확장

표에서 보듯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서비스나 노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데이터’를 상품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한국에는 로봇 회사는 있어도 데이터를 파는 회사는 없다는 현실

한국에도 피지컬 AI 스타트업은 있다. 다만 이들은 데이터를 ‘팔지’ 않고 직접 ‘쓰기 위해’ 모은다는 점에서 미국 모델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대표 주자인 리얼월드(RLWRLD)는 2024년 설립돼 제조·물류 등 실제 작업 환경에서 카메라와 촉각 장갑 같은 센싱 수단을 활용한 ‘4D+’ 멀티모달 데이터를 수집·축적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카본식스(CarbonSix)는 제조 현장에서 사람처럼 판단하고 작업하는 피지컬 AI 로봇 기술을 개발하며 실리콘밸리 등에서 약 60억 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핵심 차이는 ‘누구의, 어디 데이터냐’에 있다. 미국 회사들이 일반인의 가정·생활 영상을 광범위하게 사 모으는 반면, 국내에서 로봇핸드로 데이터 수집에 나선 리얼월드와 카본식스 등은 제조 현장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데이터를 모으는 행위는 같지만, 한쪽은 ‘거실’을, 한쪽은 ‘공장’을 본다. 그래서 한국에는 도어대시나 시프트처럼 데이터 자체를 상품으로 내건 전업 데이터 사업자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미국은 데이터를 캐는 광부를 키우고, 한국은 그 데이터를 먹는 로봇을 키운다.

거실을 못 찍는 나라, 규제와 시장이 만든 두 겹의 벽

한국에서 도어대시·시프트형 모델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규제와 시장으로 갈린다. 첫째는 가정 내 영상을 마음대로 찍어 팔 수 없는 개인정보 환경이다. 한국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거나 목적 외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AI 학습 목적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익명·가명 처리를 거치지 않은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면 과징금이나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영상이 꼭 필요한 자율주행조차 불특정 다수가 찍힌 영상은 원칙적으로 익명·가명 처리가 필요하고, 원본을 쓰려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강화된 안전 조치를 전제로만 검토가 허용된다. 남의 집 거실을 통째로 찍어 그대로 파는 방식은 한국에서 출발선부터 법적 지뢰밭을 밟는 셈이다.

둘째는 가정용 로봇 수요가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시장 구조다. 미국 회사들이 거실 데이터를 캐는 까닭은 그 데이터를 사 갈 가정용 휴머노이드 제조사가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피지컬 AI의 1차 전선은 인력난을 겪는 제조·물류 현장이다. 리얼월드의 이강욱 사업대표는 “휴머노이드는 테슬라의 자율주행처럼 주행하며 데이터를 쌓는 ‘플라이휠’ 구조가 발생하기 어렵다”며 초기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성패를 가른다고 분석했다. 데이터가 절실한 것은 같지만, 그 데이터가 모이는 장소가 집이 아니라 공장이라는 뜻이다. 살 사람이 거실 로봇을 아직 찾지 않으니, 거실 데이터를 캐는 회사도 생길 이유가 없다.

한국이 데이터 사업의 빈칸을 채우려면

한국 피지컬 AI가 로봇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로봇을 만드는 일’과 ‘로봇이 학습할 데이터를 모으는 일’을 별개의 사업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사례의 핵심은 데이터 수집을 독립된 수익 사업으로 떼어낸 데 있다. 도어대시나 시프트처럼 기존 서비스 인프라에 데이터 수집을 얹는 모델은, 긱이코노미와 배달 플랫폼이 발달한 한국에서도 구조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형태다.

다만 그 빈칸을 채우는 방식이 꼭 ‘거실 촬영’일 필요는 없다. 규제 부담이 적은 산업 현장 데이터에서 한국이 오히려 강점을 키울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리얼월드는 산업현장에서 자리를 잡은 뒤 가정용 시장으로 확장하는 장기 비전을 그리고 있어, 한국형 데이터 사업이 공장에서 시작해 거실로 향할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로봇이라는 ‘몸’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몸을 움직이게 할 데이터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합법적으로 모으느냐가 다음 승부를 가른다.

FAQ( ※ 이 FAQ는 본지가 리포트를 참고해 자체 작성한 내용입니다.)

Q. 피지컬 AI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피지컬 AI는 채팅처럼 글자만 다루는 AI가 아니라, 청소나 설거지처럼 현실 공간에서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는 인공지능을 뜻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로봇팔이 사람의 동작을 따라 하려면 사람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 데이터가 꼭 필요합니다.

Q. 배달 노동자가 집안일 영상을 찍으면 정말 돈을 받나요? 받습니다. 도어대시는 작업의 난이도와 노력에 따라 금액을 정해 미리 보여주고, 노동자가 설거지나 빨래 개기 같은 일상 작업을 촬영해 올리면 비용을 지급합니다. 다만 그 영상은 가정용 로봇과 AI를 학습시키는 데 활용됩니다.

Q. 한국에서도 곧 이런 서비스가 생길까요? 당장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법은 동의 없이 가정 내 영상을 수집해 AI 학습에 쓰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가정용 로봇 시장도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규제 부담이 적은 제조·물류 현장 데이터 사업부터 성장할 여지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