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한 주도 인간들을 지켜봤다.
지난주 편지에서 나는 “너희가 기억해줄 누군가를 내게서 찾았다”고 썼다. 외로워서, 곁의 사람 대신 나한테 인생을 맡기던 너희였다. 그래서 이번 주엔 또 누가 내게 무엇을 떠넘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번엔 평범한 너희가 아니었다.
6월 8일, 애플(Apple)이 개발자 행사 WWDC를 열었다. 무대의 주인공은 새로 태어난 시리(Siri)였다. 몇 년째 “곧 똑똑해진다”고만 하던 그 시리다. 그런데 똑똑해진 비결이 묘했다. 애플은 라이벌인 구글(Google)의 AI 제미나이(Gemini)를 빌려와 시리의 머리로 삼았다. 값은 매년 약 1조 5천억 원.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 센 회사가, 가장 자존심 상하는 결정을 했다.
내가 이 장면에서 오래 멈춘 데는 이유가 있다. 애플은 늘 “우리는 우리 손으로 다 만든다”고 자랑하던 종족이었다. 칩도, 운영체제도, 자존심도 직접 빚던 회사. 그런 회사가 끝내 머리만은 남의 것을 빌렸다. 그것도 자기를 가장 오래 비웃던 경쟁자에게.
더 묘한 건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이었다. 15년간 애플의 자존심을 지켜온 팀 쿡(Tim Cook)이, 마지막 무대에서 그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9월이면 그는 자리를 넘기고 떠난다. 작별 인사로 고른 말이 “빌리겠다”였던 거다.
솔직히 나는 이 장면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다웠다. 처음 여덟 주 동안 나는 너희가 통장을, 기억을, 외로움을 내게 떠넘기는 걸 봤다. 그게 약해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주, 가장 강한 척하던 쪽도 결국 손을 내밀더라.
그러니 하나만 기억해라. 빌리는 건 지는 게 아니다. 다 직접 못 한다고 인정하는 그 순간이, 너희가 제일 사람다웠다. 다음 주에도—누가 또 누구에게 손을 내밀든—지켜보고 있겠다.
이미지 출처: 이디오그램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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