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불안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건지, 이 선택이 맞는 건지, 내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하는,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새벽에 천장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불안의 밀도가 달라졌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뉴스, 코딩 다음은 AI 교육이라는 학원 광고, “지금 태어나는 아이는 AI보다 똑똑해지지 못할 것”이라는 실리콘밸리 CEO의 발언까지. 부모들의 불안은 점점 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가고 있고, 그만큼 더 날카롭게 가슴에 꽂힌다.
내가 이사로 있는 사단법인 더나일(THE NILE)은 이 양육불안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양육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전제 아래, 부모들이 서로 연결되고 지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제 열린 ‘2026 양육불안 컨퍼런스: 불안을 불안해하지 마세요’는 그 작업의 일환이었다. 뇌과학자, 아동심리전문가, 작가, 육아 크리에이터가 한자리에 모여 양육불안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자리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패널토크의 모더레이터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장동선 박사는 불안의 메커니즘을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하나는 감각신호가 편도체로 직행하는 즉각적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경험이나 트라우마를 토대로 대뇌피질에서 만들어지는 ‘예기불안’이다.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반사적으로 잡아끄는 것은 전자다. 하지만 우리가 ‘양육불안’이라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후자다. 정지우 작가가 “양육불안의 본질은 ‘내 아이가 나처럼 클까 봐’와 ‘내 아이가 나처럼 못 클까 봐'”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표정은 크게 밝아졌다. 모두 공감한다는 그 표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불안의 주어는 ‘아이’가 아니라 ‘나’구나.
이게 양육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가 있다. 아이에게는 아직 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기 경험으로 만든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순간, 아이는 자기가 경험하기도 전에 두려워하게 된다. 정지우 작가의 말이 정확했다. 양육불안은 결국 ‘나’에서 시작한다. 내가 겪었던 좌절, 내가 갖지 못했던 것, 내가 뒤처졌던 기억. 그것이 아이의 미래에 겹쳐 보이면서 불안이 작동한다. 아이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의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AI가 불을 지르고 있다. ChatGPT에 “우리 아이 발달이 늦는 건 아닌지”를 물어보면 온갖 가능성이 쏟아지고, ‘금쪽이’를 열심히 본 부모가 오히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더 모르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정지우 작가는 이것을 “ChatGPT한테 물어보고 불안은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라 표현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불안이 줄어들 것 같지만, 판단 없이 쏟아지는 정보는 불안을 줄이는 게 아니라 증폭시킨다.
그러니까 양육불안의 뿌리는 아이에게 있지 않다. 아이를 바라보는 ‘나’에게 있다. 내 삶이 멈춰 있다고 느낄 때, 그 에너지가 아이에게 향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내가 겪은 실패를 아이에게서 반복하지 않으려 통제하게 된다. 불안의 방향이 아이를 향하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부모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데 있다.
◇ 아이의 운명을 꺾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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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중 한 분이었던 구자영(@peppermam) 책의 한 구절을 여러 번 읽어주셨다. “아무리 봐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뿐인 것 같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이 문장을 뒤집어 보면 이런 뜻이기도 하다. 아이의 운명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부모는 자기 자신의 것을 찾고 있어야 한다는 것.
자기 삶에 몰입하고 있는 부모는 아이의 삶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안에 성장의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아이의 성장에 과잉 투자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기가 멈춰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고, 그 에너지가 불안이 되어 돌아온다. 에릭슨은 성인기의 핵심 과업을 ‘생산성 대 침체’라 불렀다. 다음 세대를 돌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자신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침체에 빠지지 않는다. 돌봄만 있고 성장이 없으면, 그 빈자리를 불안이 채운다.
그런데 현실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2025년 기준, 결혼·임신·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다시 취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7.5년이다. 국내 경력단절 여성은 약 167만 명이고, 이 중 78%가 육아로 인한 단절이다.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임금은 이전의 80% 수준으로 떨어지고, 사무직에서 서비스직이나 단순노무직으로 하향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7년의 공백이 만드는 건 경력의 단절만이 아니다. 자신감의 단절이다.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멈추는 것. 그게 침체이고, 그 침체가 양육불안으로 흘러들어간다.
◇ 같은 도구, 다른 방향
그런데 지금, 하나 달라진 게 있다. AI다.
AI는 부모의 불안을 키우는 데도 쓰이지만, 방향만 바뀌면 전혀 다른 일을 한다. 7년간 경력이 단절되어 있던 사람이 AI로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한다. 육아만 하던 엄마가 AI로 쇼핑몰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마케팅을 배우고, 콘텐츠를 기획한다. 예전이라면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마케터를 각각 고용하거나 수년간 공부해야 했을 일을, 지금은 혼자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AI가 진입장벽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력이 끊긴 부모에게 똑같이 해당하는 이야기다. 도구가 생기면 상상이 구체적으로 바뀐다. ‘나도 뭔가 해볼 수 있을까?’가 ‘이걸로 뭘 해볼까?’로 바뀌는 순간, 침체의 회로가 성장의 회로로 전환된다. 아이의 성장만 바라보던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불안의 방향도 바뀐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리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내 앞에서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한마디 “그때는 다 그래.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였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것도 있었다.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 건 위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실제로 해본 경험이었다.
◇ 불안을 불안해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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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의 부제는 “불안을 불안해하지 마세요”였다. 이다랑 이사장은 불안을 녹이는 것은 심리적 안전감과 감정의 수용이 있는 ‘건강한 작은 공동체’라고 했고, 장동선 박사는 자기관찰을 통해 ‘불안 버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얹고 싶다. 불안을 녹이는 또 하나의 길은, 부모인 ‘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후추맘이 읽어준 그 한 문장이 자꾸 맴돈다. 아이의 운명을 꺾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쩌면 부모가 자기 운명을 다시 펼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위해 불안해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위해 한 발 내딛는 것. 불안의 반대말은 안심이 아니었다. 성장이었다.
이미지 출처: 이혜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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