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오픈AI의 데이터센터 임대료를 대신 보증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현지 시각 7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고, 로이터 등이 27일 이를 받았다. 규모는 약 2,500억 달러(약 370조 원)다.
소프트뱅크의 에너지 자회사 SB에너지가 오하이오주 남부 옛 우라늄 농축 시설 부지에 10기가와트(GW) 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고, 오픈AI는 이 시설을 빌려 쓴다. 그런데 임대료와 건설 부채를 오픈AI의 신용이 아니라 엔비디아의 신용으로 조달한다. 시설에 들어갈 칩 구매 자금으로는 최대 3,500억 달러(약 518조 원)를 따로 논의하고 있다. 칩을 파는 회사가 그 칩을 살 고객의 건물 임대료까지 책임진다.
전체 사업비는 칩 값을 포함해 5,000억 달러(약 740조 원)를 웃돌 전망이다. 다만 세부 조건은 확정되지 않았고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순환의 세 단계
이런 거래는 주로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단계에서 칩 제조사가 AI 연구소에 투자한다. AMD는 지난해 10월 오픈AI에 주당 0.01달러짜리 워런트 1억 6,000만 주를 줬다. 워런트는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사실상 지분 10%를 넘긴 대가로 오픈AI는 AMD 칩 6GW를 배치하기로 했다. AMD는 지난 22일 앤트로픽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 최대 50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를 투자하고 칩 2GW 구매를 받아냈다.
두 번째 단계에서 AI 연구소가 클라우드 사업자와 장기 구매 계약을 맺는다. 앤트로픽은 아마존으로부터 최대 250억 달러(약 37조 원)를 투자받으면서 10년간 AWS에 1,000억 달러(약 148조 원)를 쓰기로 했다. 구글도 최대 400억 달러(약 59조 원)를 앤트로픽에 넣으면서 자사 TPU 5GW를 전용으로 배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가 앤트로픽에 150억 달러(약 22조 2,000억 원)를 투자했을 때도 애저 300억 달러(약 44조 4,000억 원) 구매 약정이 함께 붙었다.
세 번째 단계에서 클라우드 사업자가 그 자금으로 칩을 구매한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결국 엔비디아나 AMD의 가속기가 필요하다. 처음 투자한 칩 제조사는 이 단계에서 매출로 회수한다.
엔비디아는 클라우드 업체와도 직접 거래를 맺고 있다. 코어위브와는 2032년 4월까지 팔리지 않은 클라우드 용량을 엔비디아가 사주는 63억 달러(약 9조 3,000억 원) 규모 보증 계약을 맺었다. 이 사실은 코어위브의 증권 공시로 알려졌다. 7월 1일부터는 GPU를 빌려주는 신생 클라우드 업체에 신용을 지원해 시스템을 사게 하고 그 클라우드 매출 일부를 되받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1,000억 달러는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25년 9월 엔비디아와 오픈AI는 최대 1,000억 달러(약 148조 원) 투자를 발표했다. 1GW를 배치할 때마다 단계적으로 돈을 넣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거래는 확정 계약에 이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는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확인했고,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2026년 3월 모건스탠리 콘퍼런스에서 1,000억 달러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2026년 2월 오픈AI의 1,220억 달러(약 180조 6,000억 원) 투자 유치에 참여한 300억 달러(약 44조 4,000억 원)다. 젠슨 황은 이것이 상장 전 마지막 투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투자 철회는 이런 종류의 발표가 실제 집행까지 이뤄지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례를 보여 준다. 처음 알려진 금액의 3분의 1이 납입된 것이 아니라, 애초의 계약 구조 자체가 다른 것으로 교체됐다.
이번 오하이오 보증도 같은 단계에 있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협의 단계이며 확정 계약이 아니다.
450억 달러라던 계약의 실제 조건
올해 5월 스페이스X의 상장 신고서에서 앤트로픽이 컴퓨팅 비용으로 월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8,500억 원)를 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은 2029년까지 환산해 총 450억 달러(약 66조 6,000억 원) 규모 계약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일론 머스크가 직접 정정에 나섰다. 그는 이 거래가 다년 약정이 아니라 180일짜리 임대이며 90일 전 통보로 양측이 해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짧은 조건은 스페이스X가 요청한 것이라고도 했다.
업체들의 두 진술은 서로 어긋난다. 어느 쪽이 맞든, 공시 수치를 기간으로 곱해 산출한 총액이 계약의 실제 구속력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엔비디아와 SK그룹이 7월 24일 발표한 5,000억 달러(약 740조 원) 규모 협력도 공식 발표문에 협력의향서(LOI) 서명이라고 적혀 있다. 구속력 있는 본계약이 아니며, 추진하겠다고 밝힌 구상 규모에 해당한다.
재무제표 밖의 부채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24일 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오라클 5개사의 재무제표 밖 부채가 1조 6,500억 달러(약 2,442조 원)로 4년 만에 8배 늘었다고 분석했다. 공시된 부채 1조 3,500억 달러(약 1,998조 원)보다 많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런 부채가 늘어난 이유로 두 가지 방식을 들었다. 하나는 특수목적법인(SPV)이라는 별도 회사를 세워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그 회사 이름으로 빌리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얼마나 쓰든 정해진 금액을 내기로 하는 장기 임대 계약이다. 두 방식 모두 모회사 재무제표에는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엔비디아 하드웨어를 실제 경제적 수명인 2~3년보다 긴 5~6년에 걸쳐 감가상각한다고 지적했다. 감가상각은 자산 가격을 사용 기간에 나눠 비용으로 반영하는 회계 처리를 말한다. 기간을 길게 잡으면 해마다 잡히는 비용이 줄어 이익이 커 보인다. 그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업계 전체의 비용 과소 계상 규모를 1,760억 달러(약 260조 원)로 추산했다. 엔비디아는 순환 금융 규모가 6,100억 달러(약 903조 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공식 부인하며 전략적 투자 규모가 매출에 비해 작다고 반박했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메타 4개사의 올해 자본지출은 약 7,250억 달러(약 1,073조 원)로 예상된다. 자본지출은 설비와 시설에 들어가는 투자를 말하며, 여기서는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구매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4,100억 달러(약 607조 원)보다 77% 늘었다.
감시자들이 같은 구조를 지목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7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AI 기업의 매출 전망에는 순환 금융 구조가 반영돼 있을 수 있다”며 “기술 기업이 AI 기업에 투자하고 그 AI 기업이 다시 그 기술 기업의 제품을 사는 경우가 그 예”라고 적었다. 중앙은행이 이 표현을 보고서 본문에 직접 쓴 것은 처음이다. 같은 보고서는 S&P 500 지수에서 AI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약 4분의 1에서 현재 약 절반으로 늘었다는 집중도 수치도 함께 제시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6월 연차보고서에서 1조 달러(약 1,480조 원) 규모 AI 투자 확대가 조정될 가능성을 경고했고, 분기 보고서에는 재무제표 안팎의 차입을 다루는 항목을 따로 넣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클라우드 사업자가 AI 연구소에 투자하고 그 연구소가 다시 클라우드를 사는 상호 의존을 “순환적 AI 생태계”라고 부르며 신용 위험으로 분류했다. 무디스는 총 임대 약정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시설이라는 점을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25년 전 통신장비 시장 문제가 반복될 수도
니혼게이자이는 이 구조를 2000년대 초 통신장비 업계와 비교했다.
당시 루슨트와 노텔 같은 장비 회사는 신생 통신사에 직접 자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자사 장비를 사게 했다. 이런 방식을 벤더 파이낸싱, 즉 공급자 금융이라고 부른다. 매출은 빠르게 늘었지만 고객사가 무너지자 빌려준 돈과 매출이 함께 사라졌다. 통신 거품이 꺼진 뒤 두 회사는 회복하지 못했다.
지금의 AI 거래가 그때와 같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실제 매출을 내고 있고 수요도 존재한다. 다만 공급자가 수요자의 자금을 대는 구조라는 점, 그리고 그 매출이 자기 돈에서 나온다는 점은 같다.
한국 기업이 선 위치
한국 기업들은 이 구조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쪽에 있다.
엔비디아와 SK그룹이 서명한 협력의향서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최대 2GW 규모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여기에 SK하이닉스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들어간다. 첫 시설은 2027년 가동 예정이다. 엔비디아가 27일 출범을 알린 개방형 AI 보안 연합에도 네이버와 SK텔레콤이 창립 파트너로 참여했다.
메모리 업계로서는 장기 수요가 확보된다는 점에서 유리한 편이다. 동시에 그 수요의 상당 부분이 아직 집행되지 않은 약정과 협의 단계 계약에 걸려 있다. 오하이오 보증이 무산되거나 오픈AI의 조달 계획이 늦어지면, 그 여파는 칩과 메모리 주문 일정으로 되돌아온다.
발표된 금액과 서명된 계약, 실제로 지급된 돈은 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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