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개발에는 상당한 돈이 든다. 그러나 적시에 적절한 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면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애플과 메타의 이야기다.
메타의 143억 달러 베팅 – 알렉산더 왕이라는 인재
메타 마크 저커버그 CEO는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례 없는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 스케일AI에 143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지분 49%를 확보하며 알렉산더 왕 CEO를 영입했다.
1997년생인 알렉산더 왕은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 중 한 명으로, MIT를 중퇴하고 19세에 스케일AI를 창업했다. 그러나 AI 시장 초창기에 그의 회사는 별로 주목받았던 편이 아니었다.
스케일AI의 핵심 사업인 데이터 라벨링은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선별해 정제하고 주석을 다는 작업이다. 즉, 인공지능 추론 학습의 재료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국내에도 크라우드웍스, 에이모 등의 업체가 있다.
그러나 AI 시장 초기에는 이 작업이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하청’ 업무로 인식됐다. AI의 혁신은 주로 모델 개발(알고리즘)에서 나온다고 여겨졌고, 구글, 페이스북, 오픈AI 등 대형 테크기업의 모델 개발과 논문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또한 스케일AI는 일반 소비자 대상이 아닌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B2B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에 대중적 화제성이 부족했다. 자율주행, 의료, 국방 등 특수 산업군에 특화된 서비스는 ‘혁신’ 이미지보다는 조력자 역할로만 인식됐다.
알렉산더 왕 본인도 “2015년 이전에는 AI가 거대 기업들의 게임이었고, 데이터 라벨링은 그저 지원 업무로 여겨졌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후 AI 모델의 성능 한계가 데이터 품질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스케일AI의 가치가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메타가 왕을 영입할 때도 ‘기술자’라기보다는 ‘비전가’로서의 역량, 업계 네트워크, 사업적 통찰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더 왕은 앞으로 메타에서 ‘수퍼인텔리전스 랩’의 총괄한다. 메타가 현재 뒤처졌다고 평가받고 있는 초지능 개발을 주도할 예정이다.
메타는 최근 Safe Superintelligence(SSI)의 CEO 다니엘 그로스(Daniel Gross)를 영입하기도 했다. SSI는 현재의 딥러닝 모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모델 알렉스넷을 만들었고, 챗혰를 공동 창업한 일리야 수츠케버(Ilya Sutskever)가 공동 창업한 회사다. 메타는 SSI를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신 SSI의 CEO인 다니엘 그로스와 전 GitHub CEO인 낫 프리드먼(Nat Friedman)을 영입하기로 했다.
메타의 천문학적 인재 영입 전쟁
메타는 인재 영입에도 돈을 들이붓고 있다. 오픈AI CEO 샘 알트먼은 최근 팟캐스트에서 “메타가 우리 팀원들에게 1억 달러(약 1360억 원) 사이닝 보너스와 그보다 더 큰 연봉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트먼은 “다행히 지금까지 우리의 최고 인재들 중 누구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메타의 영입 시도가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알트먼은 “메타가 우리를 가장 큰 경쟁자로 생각한다고 들었다”며 “그들의 현재 AI 노력이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고, 공격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것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저커버그는 창업자 모드에 들어갔고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며 “메타가 AI에서 승리하려면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드림팀과 함께 다음 라운드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애플의 퍼플렉시티 인수 검토와 법적 리스크
애플도 AI 기술 격차를 메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의 인수합병 결정권자들은 최근 AI 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아직 검토 초기 단계지만 애플과 퍼플렉시티가 여러 차례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퍼플렉시티 인수 시도는 일종의 검색엔진 시장 진출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이는 구글의 반독점 재판과도 관련이 있다. 애플은 자사 기기의 웹 브라우저 사파리의 기본 검색 엔진을 구글로 설정하고 그 대가로 매년 약 200억 달러(약 27조 원)를 지불받는다. 물론 이 검색엔진은 설정에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 대부분은 구글 검색에 큰 불만을 갖지 않고 기본 검색 엔진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가 이를 ‘검색 시장 독점을 위한 구글의 반독점 행위’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애플에는 구글을 대체할 새 AI 검색 엔진이 필요해질 수 있다.
애플은 AI 관련 과장 광고로 인해 법적 분쟁에도 휘말렸다. 지난 금요일, 주주들이 애플을 상대로 증권사기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주주들은 애플이 시리(Siri) 음성 비서에 고급 AI를 통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축소해서 발표했다며, 이로 인해 아이폰 판매와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기술 격차의 실상 – 애플과 메타의 AI 실패
주요 빅테크 중 애플과 메타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AI 기술 개발에서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플 인텔리전스의 연이은 지연
애플은 사실상 AI 시장에서 별로 한 것이 없다. 2024년 WWDC에서 시리를 더 강력하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기능적인 AI 기반 시리 프로토타입조차 없는 상태였다. 2025년 3월에는 일부 시리 업그레이드를 2026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고, 2025년 6월 WWDC에서도 구체적인 출시 일정을 제시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도 준비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러한 지연으로 인한 시장의 실망은 주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애플 주식은 2024년 12월 26일 최고점 대비 약 4분의 1가량 하락했고, 이로 인해 시가총액에서 약 9,000억 달러(약 1,200조 원)가 증발했다.
메타 라마4의 참담한 실패
메타는 자체 언어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1년 전 라마3의 성공적인 출시 이후 높은 기대를 모았던 라마4는 2025년 4월 공개 후 개발자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더 큰 문제는 메타가 라마4의 작은 버전 두 개만 출시하고, 더 크고 강력한 “거대(Behemoth)” 모델은 나중에 출시하겠다고만 했다는 점이다. 이는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서둘러 출시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라마3의 성공적인 출시에 이어 올해 나온 라마4는 저커버그도 인정할 정도로 절대적인 실패였다”며 “메타는 선도적인 AI 모델을 갖는 데 실패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시장에서 AI 팀을 필사적으로 교체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쟁사와 벌어지는 기술 격차
구글의 제미나이, 오픈AI의 GPT 시리즈,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이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반면, 애플과 메타는 이들 기업들이 제공하는 수준의 AI 성능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본 AI 모델 분야에서 메타는 후발주자로 여겨진다. 메타의 오픈소스 접근법은 독특하지만, 성능 면에서는 경쟁사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치솟는 추격 비용
뒤처진 기술 격차를 메우기 위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메타는 자본 지출 규모를 올해 기존 600억~650억 달러에서 640억~720억 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저커버그는 “AI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며 데이터 센터 투자와 하드웨어 비용 증가를 이유로 들었다.
메타 CTO 앤드류 보스워스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정말 놀라운 수준의 인재에 대한 요율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기술 임원으로서 20년 경력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는 현재까지는 저커버그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아거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주 메타 주식에 대한 매수 추천을 유지하며 목표 주가를 주당 725달러에서 79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회사가 광고 타겟팅에서 생성형 AI 발전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광고 지출을 견인할 특별히 관련성 높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메타는 이러한 위기가 들 때마다 거대 자본을 투입해 경쟁사를 사버리거나 인재를 영입하는 식으로 문제 해결을 해 왔다.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저커버그가 위기를 느꼈던 마지막 때”를 언급하며 2012년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저커버그는 팀을 재구축할 것이고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낙관론을 피력했다.
AI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뒤처진 기업들의 ‘따라잡기’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 저평가됐던 데이터 라벨링 같은 기초 기술의 가치가 재평가받으면서, 이를 보유한 인재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기술 격차가 벌어질수록 이를 메우기 위한 투자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AI 시대에서는 선두를 유지하는 것이 경쟁에서 뒤처져 막대한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