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 3월 말 배포한 iOS 26.4부터 운전자는 애플 카플레이(CarPlay) 화면에서 GPT, 클로드, 제미나이를 직접 호출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매체 PCMag는 이 변화를 “차 안에서 AI 챗봇과 대화하는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이라 평가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기아 EV3 운전자의 절반이 매주 4일 이상 차량 AI 어시스턴트와 대화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차 안의 AI는 더 이상 “말귀를 알아듣는 음성 비서”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운전석은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격전지로 바뀌고 있다.
무엇이 새로워졌나 — iOS 26.4가 연 풍경
iOS 26.4의 핵심 변화는 카플레이가 처음으로 시리(Siri) 외 음성 챗봇을 정식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운전자는 카플레이 화면에서 챗GPT 앱을 열어 “지금 가는 길에 들를 만한 채식 식당 알려줘”처럼 시리에게는 어색하던 자연스러운 대화를 던질 수 있다. 응답은 음성으로만 흘러나온다. 화면에는 글자도, 이미지도, 대화 기록도 표시되지 않는다. 운전 중 시선이 도로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한 설계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챗GPT는 차량 기능을 제어하지 못한다. 내비게이션을 새로 설정하거나 에어컨을 켜는 일은 시리의 몫으로 남았다. 호출어도 따로 없다. 운전자가 직접 카플레이에서 앱을 한 번은 열어줘야 대화가 시작된다. 즉, 애플은 시리를 차량의 시스템 제어자로, 챗GPT를 동승자 역할의 대화 상대로 분리해 두 AI를 공존시키는 구조를 택했다.
이 분업 구조는 단순한 기능 분할이 아니다. 운전자는 이동 시간 동안 두 부류의 요청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하나는 “에어컨 26도, 강남역으로 안내” 같은 차량 제어 요청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저녁 약속 장소 근처에서 1시간 비는데 뭐 할 만한 게 있을까?” 같은 맥락 기반 사고 요청이다. 후자는 그동안 어느 차량 비서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iOS 26.4는 이 사각지대를 외부 챗봇에 외주 줌으로써 메운다.
음성 비서를 넘어, 차 안에서 AI가 의미하는 것
차량 안의 AI를 단순한 “버튼 대신 말로 누르는 장치”로 본다면 변화의 본질을 놓친다. 본질은 자동차가 처음으로 운전자의 의도를 추론하고, 학습하며, 대화 가능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기아가 EV3에 GPT-4o 기반으로 탑재한 ‘AI 어시스턴트’가 좋은 예다. 운전자가 “오늘 좀 덥네”라고 말하면 시스템은 단순한 온도 명령이 아니라 의도를 해석해 에어컨을 작동시킨다. 차량 매뉴얼을 뒤져야 알 수 있던 기능 설명도, 차에게 직접 물으면 음성으로 안내한다. 정보 검색, 맛집 추천, 일정 확인 같은 영역까지 한 번의 발화 안에서 처리된다. 운전자는 더 이상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검색창을 두드릴 필요가 없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 ‘에이전틱 AI(Agentic AI)’다. 글로벌 자동차 분석 매체들은 2026년의 운전자 경험을 정의하는 키워드로 “차량이 운전자의 필요를 미리 예측하고 대신 행동해 주는 능력”을 꼽는다. 출퇴근 경로의 평소 정체 패턴을 학습해 출발 시각을 먼저 제안하고, 전기차 배터리 잔량을 보며 다음 충전소를 자동으로 잡으며, 차 안에서 음식 주문이나 결제까지 처리하는 식이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이동하는 개인 비서’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한국 차는 어디까지 왔나 — 기아·현대의 답안지
국내 완성차의 답안지는 생각보다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기아는 2025년 3월 이후 출고된 EV3에 챗GPT 기반 AI 어시스턴트를 표준 탑재했다. 컨테이블 2025 서머에서 공개된 사용 데이터에 따르면, EV3 AI 어시스턴트의 주 4일 이상 헤비 유저 비중은 56%, 주 2~3일 라이트 유저는 34%에 달했다. 차 안 AI 기능이 “한 번 써보고 마는” 신기한 옵션이 아니라 일상 운전 동작 안으로 들어왔다는 신호다.
현대차그룹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룹은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와 거대 언어모델 기반 음성 비서 ‘글레오 AI(Gleo AI)’를 2026년 2분기 출시되는 신차부터 순차 적용한다. 적용 대상은 2030년까지 약 2,000만 대 이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글레오 AI는 단일 명령 처리가 아니라 “목적지 설정, 음악 재생, 일정 안내”를 한 번의 발화 안에서 동시에 처리하는 복합 명령 구조를 지향한다. 여기에 그룹은 향후 모든 현대·기아·제네시스 차량의 인포테인먼트와 AI 플랫폼으로 엔비디아 드라이브(NVIDIA DRIVE)를 채택했고, 소프트웨어 경쟁력 확보를 위해 2030년까지 18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자동차의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SDV(Software-Defined Vehicle), 즉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차량’ 시대로 본격 진입하면서 한국 완성차는 더 이상 “잘 달리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달리는 OS”를 운영하는 회사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운전석이 바뀌면 일상도 바뀐다
이 변화가 우리 일상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까운 미래 풍경 몇 장면을 그려볼 수 있다.
출근길의 운전자는 더 이상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대신 차에게 “어제 발표된 산업부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 핵심만 3분 안에 정리해 줘”라고 요청한다. 차는 신뢰할 만한 출처를 골라 음성으로 브리핑한다. 회의 자료 검토도 같은 방식으로 가능해진다. 통근 시간이 일종의 ‘청취형 학습 시간’으로 전환된다.
육아 중인 부모는 차 안에서 “아이 4살에게 들려줄 만한 우주 이야기, 10분짜리로 만들어 줘”라고 부탁한다. AI는 즉석에서 동화를 생성해 들려준다. 외근이 잦은 영업 직군은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오늘 오전 미팅 회의록 정리해 주고, 후속 메일 초안까지 만들어 줘”라고 요청한다. 차에서 내릴 즈음에는 메일 초안이 스마트폰에 도착해 있다.
핵심은 ‘이동 시간’의 정의가 바뀐다는 점이다. 그동안 운전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으로 취급돼 왔다. AI가 차 안에 들어오면서, 이 시간은 두뇌가 활성화된 채로 보내는 ‘두 번째 업무 공간’ 또는 ‘두 번째 거실’로 재정의될 가능성이 열렸다.
던져야 할 질문들 — 한국 시장의 시사점
물론 장밋빛 전망만 그릴 수는 없다. 차 안 AI가 깊어질수록 따라붙는 질문도 함께 무거워진다.
첫째는 데이터다. 운전자의 위치, 대화 내용, 일정, 결제 정보가 차량 OS를 거쳐 클라우드로 흘러간다. 어떤 데이터를 누가 보유하고 누구에게 판매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국형 가이드라인은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둘째는 안전이다. 음성으로만 응답한다고 해서 운전자의 인지 부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대화는 도리어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 셋째는 종속성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LLM에 차량 두뇌를 의존할수록 국내 자동차 산업은 차량 외관과 하드웨어만 만드는 ‘껍데기 제조사’로 밀려날 위험을 안는다. 현대차그룹이 자체 LLM과 글레오 AI에 무게를 싣는 이유다.
iOS 26.4가 보여준 풍경은 시작일 뿐이다. 다음 5년 사이, 우리는 운전석에 앉으면서 동시에 가장 똑똑한 비서와 마주 앉게 된다. 한국 완성차가 이 비서를 누가, 어떤 가치관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따라 운전자의 일상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펼쳐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