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OpenAI)가 1,0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유치를 마무리하고, 앤트로픽(Anthropic)이 300억 달러의 대형 펀딩을 마감한 가운데, AI 업계에서 투자자들의 ‘충성도’라는 개념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따르면, 이번 달 앤트로픽의 300억 달러 투자 유치에 참여한 투자사 가운데 최소 12곳이 오픈AI에도 직접 투자한 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 아이코닉(Iconiq), 인사이트 파트너스(Insight Partners),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 등이 대표적이다.
헤지펀드나 자산운용사 계열의 중복 투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D1, 피델리티(Fidelity), TPG 등은 원래 상장 주식 투자 중심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례는 업계에서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블랙록(BlackRock) 계열 펀드가 앤트로픽 투자에 참여한 것인데, 블랙록의 수석 전무이사이자 이사회 멤버인 아데바요 오군레시(Adebayo Ogunlesi)는 오픈AI 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블랙록처럼 뮤추얼펀드, 폐쇄형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형태의 펀드를 운용하는 대형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개인적 연관관계와 무관하게 투자 기회가 생기면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엔비디아(Nvidia)가 경쟁사 양쪽에 걸쳐 투자를 분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벤처캐피털(VC) 업계다. VC는 전통적으로 ‘창업자 친화적’이고 ‘파트너십 중심’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VC가 스타트업 지분을 매입할 때는 단순 재무적 투자를 넘어, 경쟁사에 맞서 해당 기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 업계의 암묵적 룰이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양쪽 모두의 주주라면, 과연 어느 쪽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은 비상장 기업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사업 현황 데이터를 직접 투자자에게 공유하며, VC가 이사회 의석을 차지할 경우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까지 발생한다.
이 문제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샘 알트만(Sam Altman) 오픈AI 최고경영자의 전력 때문이다.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 전 대표 출신인 알트만은 VC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그는 2024년 자사 투자자들에게 앤트로픽(Anthropic), xAI, 세이프 수퍼인텔리전스(Safe Superintelligence) 등 오픈AI 출신들이 창업한 경쟁사에 투자하지 말아달라는 목록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트만은 이후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에 투자하면 향후 투자 라운드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는 주장은 부인했다. 다만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가 엘론 머스크(Elon Musk)와 오픈AI 간 소송 관련 문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알트만은 투자자들이 ‘비수동적 투자(Non-passive Investment)’를 단행할 경우 오픈AI의 기밀 사업 정보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인정했다.
AI 업계가 이 같은 관행을 깨는 데는 유례없는 자금 규모도 한몫하고 있다. 대형 AI 랩들이 전례 없는 성장세와 데이터센터 수요를 바탕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에서, 수익 가능성이 막대한 투자 기회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VC가 이 흐름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 테크크런치의 조사 결과,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오픈AI에만, 멘로 벤처스(Menlo Ventures)는 앤트로픽에만 투자하고 있다.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 그리노크스(Greenoaks) 등 12개 투자사도 아직 한쪽에만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세쿼이아처럼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명망 있는 VC마저 이 오랜 불문율을 깼다는 사실은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테크크런치가 접촉한 한 투자자는 “이사회 의석을 갖지 않는 한 문제없다고들 본다”며 어깨를 으쓱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해충돌 방지 정책은 이제 창업자들이 텀시트(Term Sheet)에 서명하기 전 반드시 따져봐야 할 항목 중 하나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테크크런치(TechCrunch)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제미나이 생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