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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캠페인 탐구] “잠깐 기다려봐유” 영국 통신사가 AI 할머니로 보이스피싱범을 농락한 방법

[리얼 캠페인 탐구] "잠깐 기다려봐유" 영국 통신사가 AI 할머니로 보이스피싱범을 농락한 방법
이미지 출처: O2

“아이고! 우리 집 고양이가 또 식탁 위로 올라갔네. 참, 어디서 뭘 하라고 했더라…” 40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할머니는 계속 딴 얘기만 늘어놨습니다. 보이스피싱범은 점점 짜증이 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기다렸죠. 하지만 할머니는 절대 보이스피싱범의 요구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 할머니가 누구냐고요? 이 엉뚱한 할머니의 정체는 바로 보이스피싱범들의 시간을 빼앗는 AI ‘데이지(Daisy)’였습니다.

매주 5명 중 1명이 당하는데, 그냥 무시만 할 건가요?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대응 캠페인들은 한결같습니다. “조심하세요”, “전화를 끊으세요”, “신고하세요”라는 수동적인 메시지죠. 하지만 O2가 주목한 건 다른 지점이었습니다. 영국인의 22%가 주기적으로 보이스피싱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단순한 ‘회피’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O2 조사 결과였습니다. 응답자의 71%가 “보이스피싱범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시간 낭비가 아깝다는 이유에서였죠. O2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수해주면 어떨까?”

AI계의 친절한 금자씨, 데이지 할머니의 “시간 도둑 작전”


O2가 투입한 비밀 무기는 바로 감정적 설계가 돋보이는 AI 할머니 ‘데이지’였습니다. 단순히 보이스피싱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의 시간을 고갈시켜 범죄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였죠.

데이지의 핵심 무기는 ‘자연스러운 산만함’이었습니다. 실제 할머니들의 말투와 행동 패턴을 학습한 AI는 먼저 진짜 할머니처럼 행동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나는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서 그렇지”,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처럼 자연스럽고 엉뚱한 대화로 흐름을 비틀었죠.

이어서 고양이 얘기, 날씨 얘기, 갑자기 떠오른 추억 등으로 보이스피싱범의 집중력을 흩뜨리며 그들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가장 교묘한 건 완전히 거절하지는 않으면서 계속 “잠깐만, 조금만 기다려봐요”라며 희망을 주어 통화를 끝까지 연장시킨 점이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부 통화는 40분 넘게 이어졌고, 보이스피싱범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소중한 ‘범죄 시간’만 날렸습니다.

이번 캠페인의 진짜 킥은 관점의 전환에 있었습니다. 기존의 보이스피싱 대응 AI가 주로 ‘차단’에 초점을 맞췄다면, 데이지는 ‘유인’과 ‘지연’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선택했습니다. 보이스피싱범들이 가장 쉬운 타깃으로 여기는 ‘할머니’를 가장 강력한 미끼로 활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3천만 원으로 600억 원 효과, 실제 행동 변화까지

       AI


해당 캠페인의 효과는 어땠을까요? 수치만 봐도 놀랍습니다. 단 3천만 원(약 2만 달러)의 예산으로 시작된 이 캠페인은 미디어 도달 17억 회, PR 보도 2,000건 이상, 광고 환산 가치 600억 원, 유튜브 조회수 수백만 회 돌파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진짜 성공은 여기서부터였습니다.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실제 사용자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죠. 캠페인 이후 보이스피싱 신고 시스템 ‘7726’ 이용률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O2 고객 만족도는 10%p 상승했습니다.

AI 마케팅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능이 아닌 감정을 설계하라”

기존의 AI 캠페인들은 대부분 기술의 정확성이나 효율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더 빠르다”, “더 정확하다”는 식의 기능 중심 메시지였죠. 하지만 데이지 캠페인은 정반대 접근법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의 복수심, 유쾌함, 안도감 같은 감정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이를 AI를 통해 ‘대리 행동’으로 구현했습니다. 기술은 수단이었고, 핵심은 정서 설계와 대리 실행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데이지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나를 대신해 복수해 주는 동지’로 받아들였습니다.

O2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복잡한 기술적 우월성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적 경험으로 변환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는 대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희망과 통쾌함을 제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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