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캠페인 탐구] 97년 헤리티지를 AI로 되살리다… 헤지스는 왜 ‘로잉 클럽’에서 미래를 찾았나

패션 업계에서 헤리티지는 양날의 검입니다. 브랜드의 깊이와 신뢰성을 보여주는 자산이면서도, 때로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낡은 것’으로 인식되는 부담이기도 하죠. 특히 M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지금,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97년 된 브랜드의 클래식한 감성을 어떻게 2025년의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

AI 영화감독이 된 브랜드: 1928년에서 2025년으로

헤지스의 답은 시간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회고가 아닌, AI 기술로 구현한 정교한 시공간 재구성이었죠. ‘영국 로잉 클럽’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1928년과 2025년을 잇는 단편 영화급 영상을 제작한 것입니다.

캠브리지 대학교 로잉 클럽의 전통적 세계관은 헤지스가 추구하는 ‘클래식한 우아함’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AI는 이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핵심 도구였습니다. 시대적 배경, 인물 묘사, 조명과 색감까지 정밀하게 설계된 영상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내러티브 구조는 브랜드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스토리텔링에서 실시간 대응까지: AI의 이중 역할

하지만 헤지스의 AI 활용은 감성적 영상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실시간 마케팅에도 전격 투입되었죠. 장마철 우산 기획전에서는 해외 AI 모델 이미지를 활용해 고객 유입을 전주 대비 24배 늘렸고, ‘살안타템’ 기획전에서는 국내 AI 모델로 약 2만 페이지뷰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AI가 브랜드에게 제공하는 이중 가치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깊이 있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이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시장 반응 대응’입니다. 로잉 클럽 영상이 128만 조회수와 3,000건 이상의 반응을 끌어낸 것도, AI 모델 기획전이 매출 8배 급증이라는 구체적 성과를 낸 것도 모두 이 이중 구조 덕분입니다.

진정성의 알고리즘화: AI 시대 헤리티지의 새로운 딜레마

헤지스의 성공은 흥미로운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진짜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 ‘가상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1928년 로잉 클럽의 감성은 실제 역사가 아닌 AI가 재구성한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었죠. 25SS 로잉 클럽 컬렉션 구매 고객이 전년 대비 10% 증가하고, 40대 이하 고객 비중이 3% 늘어난 것을 보면 소비자들은 이 ‘가상의 진정성’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브랜드 헤리티지란 무엇일까요? 실제 역사의 재현일까요, 아니면 현재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해석된 이야기일까요? 헤지스의 AI 로잉 클럽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브랜드의 과거가 AI 필터를 거쳐 더 매력적으로 포장될 때, 그 감성은 여전히 ‘진짜’일까요?

더 나아가 실시간 AI 모델 기획전의 성공은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합니다. 소비자들이 AI 모델과 실제 모델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구분하더라도 상관없어한다면, 패션 브랜드의 ‘인간적 매력’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요? 헤지스는 단순히 AI 마케팅의 성공 사례가 아닌, 디지털 시대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새로운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주는 실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