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효율성과 정서적 단절 사이에서
코카콜라가 1995년 처음 선보인 ‘연휴가 다가온다(Holidays are coming)’ 광고를 AI 기술로 재해석한 올해 크리스마스 광고가 IT 및 광고업계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눈 덮인 마을을 달리는 빨간 트럭,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조명, 코카콜라를 든 미소 짓는 사람들. 익숙한 장면이지만 이번엔 모든 것이 AI로 생성됐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제작 기간은 기존 1년에서 한 달로 10분의 1로 단축됐다고 코카콜라 최고마케팅책임자 마놀로 아로요는 설명했습니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분명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이 광고는 크리스마스의 느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예술은 죽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SNS를 뒤덮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왜 또 AI인가?
사실 코카콜라의 AI 크리스마스 광고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작년에도 코카콜라는 생성형 AI로 디지털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Create Real Magic Experience’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이 개인의 크리스마스 추억이 담긴 스노우 글로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 코카콜라는 스테이블 디퓨전, 팩트토, 달리, 챗GPT를 활용해 27개 주요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110개 버전의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생성형 AI 기술 덕분에 영상 제작 속도가 빨라졌고, 수정 사항도 몇 시간 내에 반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술적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렇다면 왜 작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올해 또다시 AI 광고를 선보인 것일까요? 코카콜라는 지난해에도 같은 콘셉트의 광고를 100% AI로 제작해 혹평을 받았음에도 올해 동일한 시도를 반복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각 장면마다 트럭 크기와 바퀴 갯수가 다르다”거나 “일관성 없이 실사와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왔다갔다 한다”는 등 냉소 섞인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업계에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절감입니다. 또한 코카콜라 측은 AI 광고의 질이 지난해보다 10배는 나아졌다고 자평했습니다. 기술적 완성도가 개선되었다는 자신감이 재도전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수치로는 성공, 감정으로는 실패
역설적이게도 광고의 실제 성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광고 분석 기업 시스템1에 따르면, 코카콜라 AI 광고는 장단기 시장 점유율 면에서 강력한 장점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청량음료 및 물 카테고리 평균 3.0점에 비해 코카콜라 AI 광고는 별점 5.9점을 기록했으며, 해당 카테고리 438개 광고 중 2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시스템1의 수석 부사장 앤드류 틴돌은 테스트 대상자에게 이 광고가 AI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오디언스의 AI 콘텐츠 수용도 측면에서 이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즉, 소비자들이 AI 제작 사실을 알게 된 후의 반응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왜 이토록 강한 반발인가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AI 기술의 완성도가 아닙니다. NBC 보도에 따르면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의 니라지 아로라 교수는 크리스마스가 서로 교감하고 공동체를 느끼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인데, AI는 이런 홀리데이 시즌의 본질적 의미는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의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29년간 이어온 크리스마스 광고는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이 됐습니다. 실제 배우, 정교한 세트장, 수십 명의 스태프가 만들어낸 따뜻한 연출은 시청자들에게 설렘과 기대감을 선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광고는 그 정서적 가치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윤리적 논쟁과 일자리 위협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무단으로 혹은 초저가로 학습한 결과라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도 제기됐습니다. 애니메이션 작가 알렉스 허시는 “코카콜라의 색깔은 실직한 예술가들의 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빨간색”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인터랙티브 광고 협회에 따르면 TV 및 소셜 미디어 광고의 AI 활용도가 지난해 22%에서 올해 30%, 내년에는 39%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미국 내 광고제작사 고위직 22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91%가 향후 인력 감축을 예상했으며, 57%는 이미 신입 채용을 늦추거나 멈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카콜라의 대응: “지니는 이미 램프 밖으로 나왔다”
코카콜라 글로벌 부사장 프라틱 타카르는 AI 광고에 대한 불평은 대부분 광고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나온다며, 지니는 이미 램프에서 나왔고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위험 분산 전략도 병행했습니다. 회사 측은 AI 광고는 이번 시즌에 선보일 여러 광고 중 하나일 뿐이며, 실제 배우와 촬영 장소를 사용한 보다 전통적인 광고 ‘Holiday Road’도 준비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2년 연속 논란에도 불구하고 AI 실험을 계속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방식의 광고로 안전망을 마련한 것입니다.
시사점: 기술과 감성의 균형점 찾기
이번 논란은 AI 시대 마케팅의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기술적 효율성만으로 브랜드의 정서적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가? 특히 감정, 추억, 전통이 중요한 콘텐츠에서 AI는 어디까지 활용되어야 하는가?
코카콜라의 2년 연속 AI 광고 실험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브랜드 감성이 중요한 연말 시즌에 기술 중심 접근은 소비자 반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마케팅 효율성만 앞세운 콘텐츠는 브랜드 신뢰와 정서적 친밀감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셋째, AI가 만든 감동은 아직 인간의 창작물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합니다.
향후 브랜드들은 ‘혁신’과 ‘전통’, ‘효율’과 ‘정서’, ‘기술’과 ‘인간미’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코카콜라의 이번 시도는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값비싼 시행착오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